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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fricaim
제목 D80-11일 아비장에서(2)
작성일자 2016-07-24
조회수 202
추천수 0
 

D80-11일 아비장에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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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리를 옮겼으니 다시 이야기를 계속하지.”

문형의 말에 한형이 호텔 방에 들어오니 복장이 편해서 좋다고 맞장구를 쳤다. 우리는 너무 더워 팬티바람 차림으로 둘러앉았다.

내가 무슨 이야기부터 꺼낼까?” 하자 문형이 바로 받았다.

코트디부아르를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가 있다면 말해주라고.”

나는 키워드를 말하기 전에 프랑스가 미지의 코트디부아르에 접근하여 식민지로 확보하기까지의 과정과 식민화 이후 통치 방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코트디부아르는 온 좋게도 이웃 나라 가나에 비해 노예무역의 고통을 거의 겪지 않았다. 유럽인의 노예매매활동과 상선들이 해안을 따라 더 훌륭한 항구 조건을 갖춘 다른 지역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1637년 아비장 동쪽으로 80킬로미터, 골드코스트(현 가나) 국경 가까운 아씨니(Assinie)에 관심을 보였지만 19세기 중엽까지 코트디부아르에 확고히 발을 들여놓지는 않았다. 그러다 1843-4년 프랑스의 부에윌로메즈(Bouët-Willaumez) 장군이 오늘날의 아비장 인근 그랑바쌈(Grand Bassam)과 아씨니 지역의 수장들과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그들의 영토를 프랑스의 보호령으로 만들었고, 이어서 프랑스 탐험가들, 선교사들, 무역회사들, 군인들이 프랑스의 통제아래 석호 지역으로부터 내륙으로 지역을 점차 확대해 나갔다. 1886년 프랑스는 실효적인 점령을 지원하기 위해서 서부아프리카 해안 무역소들의 직접적인 통제를 떠맡았고 그 이듬해에는 루이 구스타브 빙게르(Louis Gustave Binger) 중위가 2년에 걸쳐 코트디부아르 내륙을 관통하는 여행을 시작, 끝날 때에는 코트디부아르에서의 프랑스의 보호령을 수립하는 조약 네 개를 체결했다. 그리고 1893년 코트디부아르는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고 빙게르 대위가 총독 자리에 올랐다.

 

코트디부아르를 식민지화 한 이후의 프랑스의 통치 방식은 세네갈 등 여타 식민지들과 대동소이하다. 그리고 그 핵심은 동화(assimilation)’에 초점을 맞추었다.

 

아프리카에 대한 프랑스의 식민화 스타일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은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그리고 자결권 선택이라는 측면에서, 프랑스어권 아프리카의 상황이 영국 식민지들의 상황과 중요한 차이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영국의 체제는 제국이 독립 자치령들의 연방을 지향한다는 통념에 느슨하게 근거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연방은 모든 식민지 국가들이 이론상으로는 열망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반면, 프랑스의 식민지 동화 체제는 제국 전체를 프랑스 본토의 내재적 일부로 간주하는 것이었다.(로버트 J.C. , 포스트 식민주의 또는 트리컨티넨탈리즘, 444)

 

세계 최대의 식민 제국인 영국이 연합(association)’의 원칙을 내세우는 반면, 2의 식민 제국인 프랑스의 공식 원칙은 동화(assimilation)’이다. ‘연합정책은 복속된 민족의 문화적 특수성을 인정하는데, 때에 따라 이 문화적 특수성이란 백인과 원주민 사이의 뛰어넘을 수 없는 인종적 차이를 의미한다. 반면 동화정책에 따른 식민화는 식민지 주민을 본국 국민의 지위로 끌어올려 궁극적으로는 모든 권리를 가진 프랑스 시민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도달하기에는 매우 어려워 보이는 목표이지만, ‘동화정책이 만민 평등의 개념처럼 절대적 가치를 가진 원칙 위에 법 체제를 구축하려는 프랑스인의 신념에서 나왔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동화의 이상은 1848년에 이미 부분적으로나마 실현되기 시작했다. 세네갈의 자치도시인 생루이, 고레, 뤼피스크(Rufisque), 다카르 네 곳의 주민은 시민권과 선거권을 얻었고, 1848년에서 1852년까지 4년간 그리고 1871년부터는 계속 대표자를 선출해 파리의 국민의회에 파견했다.(이영목·이규현·강초롱 외, 검은, 그러나 어둡지 않은 아프리카, 33)

# ‘동화라는 이상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주민 대부분의 삶은 인종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원주민법1865년부터 알제리에서 시행되었고 1887년 세네갈에 도입되었으며 곧이어 식민제국 전체로 확대되었다. 이 법은 정치적 권리를 박탈하고 특수한 사법 체계에 종속시킴으로써 원주민을 열등한 사법적 지위 아래 두려는 것이다. 이 법에 따라 모든 프랑스인 관료는 프랑스 당국의 대표자에 대한 불경’, ‘세금 미납’, ‘강제노동 불이행등의 명목으로 원주민 신민에게 15일 이하의 구금형과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었다. 더구나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개인은 10년간 구금할 수 있는 특별 권리가 총독에게 주어졌다. 원주민은 이에 대해 사법 체계에 호소할 권리가 없었다.(이영목·이규현·강초롱 외, 검은, 그러나 어둡지 않은 아프리카, 35)

 

나는 코트디부아르를 전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도록 일반적인 사항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개요의 내용을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면적 : 322,463

인구 : 2,400만 명(2014년 추정)

종족 : 아칸족 42.1%(아칸족은 이웃나라 가나에 1,150만 명, 코트디부아르에 850만 명 거주. 하위 그룹에 아산테/아샨티족 등이 있다.), 만데족 26.5%, 볼타 거르족 17.6%

종교 : 기독교 44.1%, 이슬람교 37.5%, 토착종교 10.2%(어떤 자료에서는 이슬람 40%, 기독교 26%, 토착종교 30%라는 것도 있다.)

독립일 : 196087(프랑스로부터)

초대 대통령 : 펠릭스 우푸에부아니(집권 기간 1960.11.3.-1993.12.7.)

정치행정 수도 : 야무수크로(아비장 북서부 240km에 위치, 인구 355천 명)

경제 수도 : 아비장

경제 : 카카오 세계 1위 생산.(이웃나라 가나 세계2. 따라서 오늘날은 상아해안과 황금해안 대신 카카오해안으로 불러야 마땅) 식품 가공, 목재, 직물 제조, 화학, 정유

수출 : 코코아 25%, 코코아버터와 페이스트 7.9%, 원유 11%, 석유 역청 4.4%

통화 : 세파 프랑(CFA franc)

특기사항

2002.9.19. - 2007.3.4. 1차 내전(45개월)

2010.11.18.- 2011.4.11. 2차 내전(4개월 2) Gbagbo 체포, Ouattara/유엔/프랑스 승리

(Laurent Gbagbo 2000.10.26.-2011.4.11.대통령 재임, Alassane Ouattara 2010.12.4.-현재 재임 중)

 

코트디부아르에 대해서 대충 알겠으니 이제 키워드를 말할 때라고 문형이 재촉했다. 키워드라면 뭔가 핵심을 찌를 것 같은 감이 들어서일까?

한 나라를 몇 개의 키워드로 압축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코트디부아르는 가능할 것 같애.” 나는 코트디부아르에 관해 과거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에 근무할 때 들어보기도 했지만 최근 책도 몇 권 읽어본 터라 용감하게(?) 말했다.

그게 뭔데?”

세 가지야. 프랑스, 우푸에부아니, 카카오.”

그러자 문형이 제법 문형답게 풀이했다.

프랑스는 식민 종주국이었으니까 그 영향력이 지금도 미치고 있다는 말인 것 같고, 우푸에부아니는 우리가 도착한 공항 이름이었는데 초대 대통령이었다는 말을 들었고. 그런데 카카오는 잘 모르겠는데.”

내가 물었다.

문형이나 한형께서는 초콜릿 좋아 하지요? 잘 알다시피 초콜릿의 원료가 카카오 아닙니까? 지구상에서 카카오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이 코트디부아르예요.”

나는 우리가 지나온 세네갈과 지금 머물고 있는 코트디부아르, 그리고 다음에 방문할 가나 3개 국가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다고 말했다. 공통점과 차이점을 검토하다보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탁자 위 백지에다 볼펜으로 아래와 같은 도표를 그리면서 설명했다.

 

                            세네갈                         코트디부아르                            가나

독립일자             1960.4.4.                          1960.8.7.                          1957.3.6.

식민종주국            프랑스                              프랑스                                영국

공용어                 프랑스어                          프랑스어                              영어

통화              세파프랑(CFA franc)       세파프랑(CFA franc)           가나 세디(cedi)

초대 대통령   레오폴 세다르 셍고르      펠릭스 우푸에부아니            크와메 은크루마

재임기간      1960.9.6.-1980.12.31.      1960.11.3.-1993.12.7.       1960.7.1.-1966.2.24.

퇴임               평화적 정권 이양           사망에 의한 정권 이양               군부 쿠데타

현 대통령         4Macky Sall         5Alassane Ouattara    13John Dramani Mahama

특기사항        카사망스지방 갈등          부아니 사후 내전              잦은 쿠데타와 정권교체

                        1982-2014.5.1.      12002.9.19.-2007.3.4.

                                                     22010.11.18.-2011.4.11.

 

코트디부아르와 프랑스 간의 관계에서 식민지라는 역사성도 중요하지만 언어와 통화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라고 일컬을 만큼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통화는 경제활동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독립한 후 언어에서 프랑코포니(La Francophonie)라는 불어권 국가들간의 유대, 통화에서 세파 프랑과 프랑스 화폐간의 연동은 이미 세네갈 편(D80-6)에서 밝힌 바 있다. 언어와 통화에 이어서 다음은 사람이다. 여기에는 물론 조직이나 군사도 포함되어 있다. 다음 두 자료를 읽어보자.

 

1965년 코트디부아르 정부 조사를 보면 유럽인은 국내 모든 관리직의 85퍼센트, 간부의 81퍼센트를 차지했다. 반면 코트디부아르인은 엇비슷한 비율로 하급 사무직을 채웠다.(캐럴 오프, 나쁜 초콜릿, 154)

 

2000년 말 코트디부아르에는 210개 프랑스 대기업의 지사가 설치되어 있고 투자액은 22억 유로에 이른다. 주요 투자자는 프랑스의 수력발전회사 부이그 소르, 프랑스 전력공사(EDF), 프랑스 텔레콤, 정유회사 토탈(Total), 운수업체 볼로레, 베엔페 파리바 은행, 크레디 리오네 은행, 소시에테 제네랄 은행이다. 이들 프랑스 기업들은 코트디부아르 총생산의 25%를 점하고 있는데, 이는 이 나라 예산의 절반 이상에 해당한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부터 크게 변화가 일어나 프랑스 일변도의 교역 상황은 그쳤다.(이영목·이규현·강초롱 외, 검은, 그러나 어둡지 않은 아프리카, 78-79)

 

한편 짐 로저스는 가나와 코트디부아르 간의 차이를 한 나라는 영국, 또 한 나라는 프랑스의 식민지였다는 점에서 찾기도 한다. 짐 로저스는 20004월 가나와 코트디부아르를 방문한 적이 있다.

 

1950년대와 60년대 가나와 나이지리아, 감비아가 잇달아 독립하자 영국은 이들 나라에서 완전히 철수했고 독립 정부에게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했다. 따라서 이들 나라 정부는 자체적으로 중앙은행을 만들어 자기 나라 통화를 발행했다. 반면 코트디부아르와 같은 프랑스 식민지는 지금도 여전히 프랑스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옛 프랑스 식민지 국가에 가면 어느 도시든 프랑스의 영향력이 상당히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프랑스 사업가를 만났고, 거리를 지나는 프랑스 군인들을 보았고, 사치스러운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즐겼고, 프랑스산 고급 와인과 치즈를 구입할 수 있었다. 서점에서는 프랑스에서와 마찬가지로 세계 각지의 불어 사용권 학교에서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불어를 쓰는 나라의 지도를 구할 수 있었다. 프랑스는 독립한 옛 식민지 국가의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아프리카의 옛 식민지였던 14개 국가에서 세파 프랑(CFA franc)’이라는 통화를 사용한다는 점이다.(짐 로저스, 어드벤처 캐피털리스트, 239-240)

 

나는 세 나라를 비교하는 기회에 독립 이후 1인당 국민소득(달러)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도 덧붙여 말했다.

 

                          1982년   1990년   2015

세네갈                   490        700       913

코트디부아르         960        620     1,315

가나                      380        310     1,340

 

위 수치를 살펴보면 세네갈과 코트디부아르는 특히 1980년대에 카카오의 국제시세 폭락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고, 가나는 독립 직후 잘못된 정치외교노선을 선택하고 거듭되는 정국 불안 때문에 큰 영향을 받았음을 시사하고 있다. 다만 가나가 20151,340달러라는 괄목할 만한 수치를 기록한 것은 석유 산출에 힘입은 바 크다. 가나는 2007년 주빌리(Jubilee) 유전을 개발했다.

 

나는 밤도 이슥한 만큼 다른 키워드, 즉 펠릭스 우푸에부아니와 카카오에 대해서는 다음 날 야무수크로에 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고, 두 사람도 이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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