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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fricaim
제목 D80-10일 귀로에 투아레그족과 도곤족을 생각하다
작성일자 2016-06-22
조회수 459
추천수 0
 

D80-10일 귀로에 투아레그족과 도곤족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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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태우고 왔던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황갈색 사막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팀북투와 그 일대가 한 눈에 들어왔다. 팀북투를 만들고 있는 건 주사위 모양의 진흙벽돌 집들이었다. 집들은 수백 년 동안 바람과 햇빛과 모래에 시달려 과거의 영화를 오래전에 잃어버린 모습이었다.

낙타를 끌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투아레그족이 뇌리를 스쳤다. 사막과 낙타와 투아레그, 그야말로 삼위일체를 이룬 한 폭의 멋진 그림 아닌가.

# 아프리카에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종족은 케냐와 탄자니아를 주 무대로 한 마사이족일 것이다. 하지만 아프리카에는 종족이 많다.(‘종족이라는 용어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도 있다) 북부에는 베르베르족과 무어족, 사하라 사막과 서부에는 만데족, 투아레그족, 월로프족, 풀라니족, 서남부에는 가나를 중심으로 한 아샨티족, 중서부에는 피그미족, 투치족, 후투족, 남부에는 부시맨(산족), 호텐토트족, 줄루족, 동부에는 마사이족, 키쿠유족, 칼렌진족, 누에르족, 딩카족 등이 있다. 특히 면적과 인구가 많은 나이지리아에는 500개가 넘는 종족이 있는데 하우사족, 요루바족, 이그보족/이보족, 풀라니족 등 네 종족이 인구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하우사족과 풀라니족은 북부, 요루바족은 남서부, 이그보족은 남동부에 많이 분포하는데 비아프라 내전(1967.5.30.-1970.1.)은 이그보족이 세운 비아프라공화국과 나이지리아 정부 간에 발생한 비극이었다.

 

우리 조상들이 팀북투를 세웠다는 걸 알고 있었니?”

나는 모닥불 맞은편에서 고개를 가로 저었다.

거긴 우리 조상들이 세웠단다, 세우고말고. 원래는 팀북투를 사막의 문 혹은 333성인의 문이라고 불렀지. 투아레그 속담에, ‘금은 남쪽에서 오고, 소금은 북쪽, 그리고 돈은 백인의 나라에서 오지만, 불가사의한 이야기와 신의 말은 오직 팀북투에만 있다는 말이 있단다.”

(프란시스코 디아스 바야다레스, 투아레그의 딸, 18)

# ‘(Tim)’이란 말은 옛날 타마지트어(Tamazight)우물, ‘북투큰 배꼽을 뜻한다. 고대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Cusco), 그리스 델피의 옴팔로스(Omphalos)를 세계의 배꼽이라 일컫는데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말일까?

 

투아레그족은 본래 사막의 유목민으로 바람처럼 이동하며 살았던 종족이다. 국가별 분포를 보면 니제르 162, 말리 85, 부르키나파소 5, 알제리(남부) 25천에서 15, 리비아(남서부) 2만 명 등 다섯 나라에 250만 명에서 300만 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또 이들이 전체인구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니제르 9.3%, 말리 10%, 부르키나파소 3.1% 등으로 소수 종족에 불과하지만 국가라는 울타리가 생기면서 중앙정부와 충돌하는 일이 많다. 무사 앗사리드는 말리의 투아레그족이 니제르의 국경을 넘는 것은 조국을 바꾸는 게 아니라 다른 투아레그족을 만나는 것이다. 우리에게 국경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부족들뿐이다. 하늘에는 국경이 없다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그 다섯 국가들에게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다. 경제적·정치적인 위협으로부터 고통 받던 투아레그인들은 1990년 그들의 문화를 지키고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혁명을 일으켰다. 그때 니제르와 말리 정부에 의해 학살당한 투아레그인들이 약 1만 명에 달한다.

혁명 이후 니제르와 말리 정부는 투아레그인들에게 거주 지역을 정해주고 그 울타리 안에서 살아갈 것을 명했다. 그들은 유목을 그만두지 않으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없을 것이며, 의료 혜택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평생을 사막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며 유목을 하던 우리에게 유목을 그만두라고 하는 것은 죽으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는 우리의 조상이 살아온 방식대로 앞으로도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무사 앗사리드, 사막별 여행자, 113)

 

이해를 돕기 위해 피터 그윈이 <내셔널지오그래픽>지에 사하라 사막의 잊혀진 지배자들이란 제목으로 실은 글을 옮겨 적는다.

 

20세기 초 투아레그족은 서아프리카의 여러 민족 중 가장 나중에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그들이 살던 땅은 니제르, 말리, 알제리, 리비아 영토로 흡수됐다. 4개국 정부들은 다루기 힘든 소수민족인 투아레그족을 대체로 무시했고, 그들이 낙타와 염소 무리를 이끌고 사막을 떠돌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최근 몇 십 년간 우기에 강우량이 점점 줄어들면서 투아레그족은 꽤 많은 가축 떼를 유지하는 데 애를 먹었다. “가축은 투아레그족에게 삶의 전부예요. 우리는 가축의 젖을 마시고, 고기를 먹고, 가죽을 활용하고, 가축을 거래하지요. 가축들이 죽으면 투아레그족도 죽는 거예요.” 어느 투아레그족 노인이 예전에 내게 한 말이다.

(중략)

가축 떼가 감소하면서 니제르에 거주하는 많은 투아레그족은 그들의 방목지에 풍부하게 매장돼 있는 우라늄을 수십 년 동안 거래해 생긴 수입을 나눠달라고 니제르 정부에 요구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는 이 문제를 놓고 투아레그족 민병대가 니제르 정부군과 싸움을 벌였는데, 민병대원 중 다수가 카다피에게서 훈련을 받았고 무기도 공급받았다.(내셔날지오그래픽 2011.9 114)

 

얼굴을 감싸는 푸른색 터번, 검은 옷, 투아레그의 칼 타구바(takuba)는 투아레그족의 정체성을 나타내 주는 상징이다. 투아레그족 남자들은 전통적으로 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를 터번으로 가린다. 천으로 겹겹이 얼굴을 감싸면 따가운 햇볕과 거친 바람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감정도 숨길 수 있다. 푸른색 터번은 투아레그족의 오랜 표식이다. 푸른색은 생명의 근원인 물과 아버지 하늘에서 온 색이라는 말도 있다. 예전에 투아레그족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이들을 푸른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남자들과는 달리 여자들은 얼굴을 좀처럼 가리지 않는다. 토파즈처럼 푸른 눈동자에 쪽빛 염료로 손을 물들인 투아레그족 여인들.

 

투아레그족은 스스로를 이모학(Imuhagh/Imushagh)’이라고 부른다. ‘자유로운 존재혹은 독립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 현실에서 투아레그족은 오늘날 더 이상 자유롭지 않다. 그들의 자부심과 용기는 이미 오래전에 하루하루의 생존경쟁에서 닳아 뭉개져버렸다. 산업화, 비행기, 그리고 화물차들이 쉴 새 없이 무거운 짐을 나르는 도로와 우회로의 건설은 투아레그족에게서 사하라 횡단 무역이라는 존재의 토대를 앗아가고 말았다.(아킬 모저, 당신에게는 사막이 필요하다, 143)

 

상실감 때문이었을까? 소외감 때문이었을까? 투아레그족은 지난 100년 동안 다섯 번이나 반란을 일으켰다. 1916-1917년에는 프랑스 식민지배에 항거해 일어났고, 말리가 프랑스에서 독립한 직후인 1962-1964년에는 프랑스 식민주의가 끝나면 사하라 사막 지역에 의해 투아레그, 베르베르, 아랍의 독립적인 국가가 형성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렇지 못해 일어난 반란이었다. 이를 1차 투아레그 반란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1990-1995년에는 자율권이나 자체 국가형성을 목표로 반란을 일으켰는가 하면, 20072월부터 20092월과 5월 사이에 말리 북동부와 니제르 북부에서 일어난 반란은 상대적 박탈감 내지 빈곤감과 우라늄 등 광물자원에서 나온 수입 배분에 대한 불만 때문에 발생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인 2012. 말리 북부 아자와드(Azawad)지역의 독립 획득을 목표로 116일 일어난 반란은 아자와드 민족해방운동(MNLA)이 승리를 거둬 46일 독립을 선언하기까지 했다. 북부말리 갈등(Northern Mali Conflict)의 초기 단계였다. 이들이 승리를 거둔 배경에는 리비아 내전(2011.2.15.-10.23.)의 종료로 리비아에서 훈련받은 투아레그족 청년들이 귀국하고 무기를 들여온데 힘입었다. 게다가 내전 중인 323일에 군부 쿠데타까지 발생해 어수선한 때였다. 헌데 욕심이 채워지면 또 다른 욕심을 부리게 되는가. 6월부터 아와자드 내부에 갈등이 일어났다. 이슬람 근본주의와 국가주의간 갈등이었다.

# 아자와드 민족해방운동(Mouvement National de Libération de l'Azawad, MNLA)는 말리 북부 영토인 아자와드의 독립을 요구하는 정치 및 군사 조직이다. 투아레그족이 주축이며, 2011년 리비아 내전 당시 주로 정부군 쪽에서 용병으로 싸우던 전사들이 전쟁 후 말리로 돌아온 뒤에 결성되었다. 초기에는 이슬람 급진 세력인 안사르 디네(Ansar Dine)과 함께 아자와드 지역을 통제하고, 20124월 독립을 선언했다.

# 안사르 디네 는 아랍어로 이슬람 종교 도우미’, ‘신앙의 방어자라는 뜻이다.

 

내전이 확대되면서 말리 정부는 2013111일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프랑스는 말리에 거주하는 6천여 명의 자국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군사 개입을 시작, 반군에 함락된 도시를 탈환했다. 이때 미라주 전투기들이 프랑스 낭시의 공군기지에서 이륙해 4,150킬로미터 떨어진 차드 수도 은자메나 공항에 배치되었다고 한다. 618일 프랑스와 말리 동맹군이 승리를 거두고 반군과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말리를 비롯 인근 국가에서는 아직도 총성이 멈추지 않고 있다. 앞서 밝힌 대로 아자와드 내부의 갈등이 가라않지 않고 있는 가운데 알카에다 이슬람마그레브 지부(AQIM, Al-Qaeda in the Islamic Maghreb)가 말리, 부르키나파소, 코트디부아르, 알제리 등지에서 테러를 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에 개봉한 영화 <팀북투>는 안사르 디네의 팀북투 점령 하에서 일어난 이슬람 근본주의의 폐해를 다루고 있다. 모리타니 동남부 오아시스 소도시 우알라타(Oualata)에서 촬영한 것으로 알려진다.

 

문형이 갑자기 내 무릎을 툭 치며 물었다. “김형, 저 아래 보이는 곳이 어디야?”

눈을 부비며 보니 비행기가 몹티 상공을 날고 있었다. “몹티라는 도시 같은데.”

이제 반쯤 왔나?”

지루한가 보지?”

단조로운 풍경이니까.”

풍경이 단조롭다고? 단조롭지 않은 풍경에 대한 이야기 해줄까.”

이 나라 이야기인가?”

그럼. 반디아가라와 도곤족에 대해 들어본 적 있어? 2011년 초 KBS1 ‘걸어서 세계속으로에서 방영한 적 있는데. ‘삶과 예술의 교차로 서아프리카 말리란 제목을 달았지.”

나는 그 프로 보지 못했어.” 문형의 말에 한형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나는 반디아가라(Bandiagara)와 도곤(Dogon)족 이야기를 꺼냈다. 말리 중부고원과 니제르 만곡부 북쪽에 살고 있는 도곤족의 인구는 40만에서 80만 명으로 추산되어 말리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하지만 지형은 물론 주거형태, 생활양식, 신화 등 문화가 독특해서 문화인류학자와 관광객들의 이목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몹티에서 동남동쪽으로 약 65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반디아가라 라는 인구 26천 명의 도시에는 도곤족, 풀라니족, 밤바라족 등이 거주하고 있다. 또 총 길이 150킬로미터에 높이가 100미터에서 500미터에 달하는 반디아가라 사암 절벽지대에는 도곤 국가의 문화수도처럼 여겨지는 10개 마을과 바위 고원의 고립된 6개 마을, 그리고 절벽과 평원의 44개 마을에 도곤족이 살고 있기 때문에 도곤의 나라라고까지 일컬어지고 있다. 이곳에는 아래 오골(Ogol-du-Bas), 위 오골(Ogol-du Haut) 같은 구역도 11개가 있고, 특히 상가(Sangha)라는 인구 34천 명의 도시는 도곤 문화의 중심이 되고 있다. 티렐리, 유가, 야예, 바나니, 봉고 등은 상가 공동체의 전형적인 도곤 마을이다.

# 프랑스 인류학자 마르셀 그리올이 도곤족의 신화에 대해 쓴 물의 신은 번역서가 나와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1996년에 <동아일보>(3.17), 2001년에 <주간 동아>(303(9.27), 그리고 2003년에는 한국판 <지오(GEO)>(7월호)에 반디아가라와 도곤족이 소개된 바 있다. 유종현은 아프리카의 부족과 문화에서 도곤족의 삶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도곤족은 반디아가라의 원주민인가?” 문형은 역시 역사에 관심이 많다.

“11세기부터 16세기까지는 체구가 작은 텔렘(Tellem)족과 톨로이(Toloy)족이 절벽 동굴 속에서 살았다고 해. 그런데 이슬람 종교가 사하라 사막을 건너오자 도곤족이 자신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이곳으로 피난 왔다는 거야. 결과적으로 텔렘족과 톨로이족이 쫓겨난 거지.”

날벼락 맞았네. 동굴들은 지금도 남아있나?”

그럼. 깎아지른 듯한 절벽 중간에 있는 동굴들이기 때문에 오르내리는 길이 아슬아슬 해. 특히 물이 귀하고 식량을 아래 평지에서기 구해 와야 하기 때문에 지금은 대다수 사람들이 절벽 아래 마을에 살고 있지. 그런데 그 마을의 구조가 독특해.”

어떻게 이루어졌는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데 말로 설명하려니 어렵네. 대장간, 집회소(toguna), 광장, 민가와 곡물창고, 생리중인 여자들의 집, 제단 등이 마을이라는 인체의 머리, , 가슴, 발 같은 곳에 배치되어 있어.”

 

프랑스 문화인류학자 마르셀 그리올은 194610, 사고로 장님이 된 아래 오골(Ogol-du-Bas)’의 사냥꾼 오고트멜리의 집에 초대받았다. 신체장애 덕분에 오랫동안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오고트멜리는 뛰어난 지성과 도처에서 평판이 자자할 정도로 지혜를 갖춘 인물이었다. 마르셀 그리올과 오고트멜리는 33일 동안 잊을 수 없는 대화를 했는데 다음은 마을의 구조에 대해서 14일째 나눈 대화의 일부이다.

# 마르셀 그리올(Marcel Griaule)1928년 에티오피아에서 첫 번째 민족학 조사를 했다. 1931년 다카르-지부티 탐사 참여는 그의 학문적 생애에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그리올은 이때 말리의 반디아가라 고원에 사는 도곤족과 처음으로 접촉했고, 그 후 1937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도곤족의 문화, 사회적 관습, 의례, 신화 등을 연구했다. 이 연구 성과를 토대로 박사학위 논문 <도곤족의 가면들>(1938)을 쓴 그는 도곤족의 한 현자 오고트멜리와 나눈 대화를 통해 보다 깊은 인식에 도달하게 되었다. 오고트멜리와의 대화는 1948물의 신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다. 1943년 소르본 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1956년 사망했다.

 

마을은 반듯이 누운 사람의 몸처럼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어있어야 합니다. ‘아래 오골은 이러한 규칙에 거의 들어맞지요. 최초의 밭을 상징하는 제일 큰 광장에 있는 집회소가 머리입니다.”

오고트멜리가 들려주는 말에 따르면, 마을은 사각형을 이루어야 하며, 그 중 한 면은 북쪽을 향하고 골목길은 남북 방향과 동서 방향으로 뻗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평지에서나 가능한 것이고, 울퉁불퉁한 곳이나 절벽지대의 황무지에 있는 마을에서는 그곳 사정을 감안하여 세워진다.

문명의 선구자인 대장장이의 대장간처럼 마을의 대장간도 광장 북쪽에 있다.

생리중인 여자들을 위한 집은 동쪽과 서쪽에 있으며 자궁처럼 둥글게 생겼다. 이 집은 두 손이고, 큰 집은 가슴과 배, 남쪽에 세운 공동의 제단은 발이다.(마르셀 그리올, 물의 신, 128-130)

 

특히 마을 대광장에 세운 남자들의 집회소는 집 건물과는 사뭇 다르다.

 

상가에 있는 집회소는 조 다발을 여러 층 쌓아올려 만든 사각형 더미로 되어 있다. 이 더미는 길이가 고르지 않은 나뭇가지로 엉성하게 만든 판 위에 얹혀 있다. 그 판 밑에는 단단한 돌이나 나무로 된 기둥이 세 줄로 나란히 세워져 있다.

날이 더워지면 남자들은 한담을 나누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집회소 아래로 모인다. 특히 노인들은 거기서 회의를 열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며 공적인 일들을 처리한다. 과거에 마을을 세울 때 사람들은 집회소와 여자들의 집을 가장 먼저 지었다..(마르셀 그리올, 물의 신, 130-131)

 

마을에 추장이 있나?”

영적 종교적 지도자가 있지. 호곤(Hogon)이라고 부르는데 가장 연장자 중에서 선출한다고 해. 도곤족의 문화는 신화에 기반을 두고 있어. 성경의 창세기 같은.”

나는 유일신이자 창조신 암마, 첫 번째 창조에서 태어난 재칼, 물의 정령인 한 쌍의 노모, 한 쌍의 인간, 여덟 번째 노모의 후손인 레베에 대해서 서투른 지식으로 설명해 보았지만 얼른 이해가 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물의 신의 몇 대목을 빌려 정리한다.

 

별은 유일신인 암마(Amma)가 우주에 던진 조그만 진흙 덩어리이다. 그는 복잡한 기술을 사용해서 해와 달을 창조했다. 암마 신이 별을 만들 때처럼 진흙 덩어리를 들고서 손으로 꾹 눌러서 던지자, 진흙은 사방으로 늘어나 위로는 북쪽까지 뻗쳤고, 아래로는 남쪽까지 길게 뻗쳤다. 땅은 자궁 속 태아와 같이 사지가 분화되어 나오면서 동서로 뻗었다. 땅은 하나의 몸, 다시 말해 중앙의 몸체에서 뻗어나온 사지를 가진 사물이다. 이 몸은 하늘을 바라보며 남북으로 길게 누워있는 여인이다. 개미집은 그녀의 성기이고, 흰개미집은 음핵이다. 이 피조물과 결합을 원하는 유일신 암마는 그녀에게 다가간다. 바로 그때 우주의 첫 번째 무질서가 생겨나고 말았다. 예상했던 쌍둥이가 태어나는 대신 신의 불만을 상징하는 단일한 존재의 재칼, 황금빛 늑대가 태어난 것이다.

신은 또다시 관계를 가졌다. 이번에는 그들의 결합을 방해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신성한 씨앗인 물이 땅의 품에 스며들며 생식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져 쌍둥이가 잉태되었다. 노모(Nommo)라 불리는 이 두 정령은 신과 마찬가지로 신성한 본질을 지닌, 신이 만든 동일한 두 작품이었다. 이 한 쌍은 태어날 때부터 완전무결했다. 그들은 8개의 팔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숫자는 8이었는데, 그것은 말(parole)을 상징했다. 오트고멜리는 이란 단어와 노모란 단어를 동일하게 사용하며 말했다. “만약 노모가 없었다면 땅은 창조되지 못했을 겁니다. 땅은 반죽된 것인데, 땅이 생명을 얻게 된 것은 물, 즉 노모 덕분이었으니까요.”

 

내가 말했다. “텔레비전에서 보았는데 도곤족의 가면 춤은 대단히 인상적이더라고.”

가면이라고요?” 한형이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관심을 보였다.

도곤족은 독자적인 우주관과 창조신화, 동물 및 조상숭배 신앙, 가면 춤을 추는 장례의식 등 독특한 전통문화를 발전시켜 왔어요. 특히 78가지나 되는 가면과 가면을 쓰고 추는 춤은 도곤족의 문화를 대표하는 것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그들을 가면의 현자라 부르기도 한답니다.”

어떤 때 가면 춤을 추게 되나요?”

규모와 표현의 장엄함에서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는 시구이(Sigui) 의식이 대표적입니다. 그것은 부족 전체가 60년마다 기념하는 축제지요. 이 축제는 그 기간 내내 도곤족 마을 전체를 흥분시킨다고 합니다. 롬베(Rhombe)라는 악기의 요란한 소리와 함께 의식을 시작하는데, 어린아이와 여자들의 접근은 금지됩니다.”

 

도곤족은 60년에 한 번씩 시리우스가 두 산봉우리 사이에 나타날 때 '시구이'라는 의식을 치른다. 이는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 시리우스에서 수륙양생(水陸兩生)의 외계 지성체들이 양떼를 몰고 지구에 내려와 도곤족을 방문했다는 믿음에서 치르는 의식이다. 젊은 남자들은 의식 전 3개월 동안 속세와 격리된 곳에 은둔하며 몸을 청결하게 하고 비밀언어를 사용하면서 지내야 한다. 이들은 망원경 등의 관측기구 도움 없이도 예전부터 시리우스에 짝별이 존재하는 등의 정확한 천문학적 지식을 지니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시구이 의식은 독특한 가면과 의상을 갖춰 입고 격렬한 춤을 추며 행해지는 의식으로 형이상학적인 형태의 다양한 가면을 쓴다. 가면들 중 중심이 되는 가면은 시리게(Sirige)’ 가면이다. 길쭉한 형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뱀을 뜻하는 시리게 가면은 높이 6-10미터나 되는 나무막대를 얇게 깎은 뒤 그 양면에 직사각형과 원형 등 각종 기하학적 무늬를 붉은 색과 흰색을 칠해 계단식으로 장식한다.

본격적인 의식이 시작되고 춤을 출 때는 머리 위로 치솟은 긴 막대를 360도로 휘돌린다. 이는 도곤족의 창조신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창조신 암마가 무수한 별들이 회전하는 우주 창조의 순간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시리우스 성좌의 귀인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 타고 내려온 긴 사다리를 상징하기도 하며 그들의 의식에서 중요한 높은 제단을 형성한 것이기도 하다.(아프리카박물관, JAMBOTIA(안녕! 이곳이 아프리카야), 56-57) 장대다리 춤도 볼만하다. 카나가(kanaga) 가면은 마스크의 얼굴 부분 위로 한자의 날 출()자 형태를 붙여 새의 날개 짓 모습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하는데, 위로 향한 날개 짓은 하늘 신을 위한 것이고, 아래로 향한 날개 짓은 땅의 신을 위한 것으로 음양의 조화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시리우스 성좌와도 관계가 있나?” 문형이 물었다. 시리우스 성좌 역시 나는 문외한이라 얼버무렸다.

 

시리우스(Sirius)는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로, 천랑성(天狼星), 낭성(狼星), 큰개자리 알파라 부르기도 한다. 시리우스는 겉보기 등급이 -1.47로 두 번째로 밝은 카노푸스보다 두 배 정도 더 밝으며, 태양을 제외하고는 가장 밝은 별이다. 시리우스는 지구에서 맨눈으로 볼 때는 단독성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 별은 백색 왜성을 반성으로 거느리고 있는 쌍성계로, 우리 눈에 보이는 밝은 별은 시리우스 A, 맨눈으로 볼 수 없는 짝별은 시리우스 B로 불린다. 시리우스는 지구 북반구 위도 30~73도 사이에 거주하는 사람(유럽 대부분, 동아시아, 북아메리카 대부분 포함)이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 중 지구에서 태양 다음으로 가깝다.

1844년 독일 천문학자 프리드리히 베셀(Friedrich Bessel)은 시리우스의 고유운동 변화로부터 시리우스가 보이지 않는 동반천체를 거느리고 있다고 추론했다. 그로부터 약 20년 후 1862131일 미국의 망원경 제작자이자 천문학자 앨번 그레이엄 클라크(Alvan Graham Clark)는 어두운 짝별 '시리우스 B'를 발견했다. 그는 디어본 천문대 18.5인치 구경 조리개가 장착된 대형 굴절기 성능시험을 하던 중 시리우스 B를 발견했다. B를 발견한 관측기구는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굴절망원경이었다.(위키피디아)

# ‘시리우스B‘1862년 당시 최대의 망원경을 사용해서 미국의 앨번 클라크가 처음으로 발견했다. 그 밝기는 시리우스A10만분의 1밖에 되지 않고 사진촬영에 성공한 것은 1970년의 일이었다. 또한 시리우스C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1995년이다. <이종호, 과학으로 여는 세계불가사의 2, 문화유람, 2006, 414>

 

도곤족은 시리우스 B포톨로(Po Tolo)’라고 부른다. 포는 작다, 톨로는 별이라는 의미다. 놀라운 것은 도곤족이 시리우스 B가 시리우스 A의 주위를 따라 돌고 있다는 것과 밀도가 높다는 것, 그리고 그 공전 주기가 약 50년이라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에 대해 서구의 여러 학자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1978년 출판된 의심많은 질문자에 따르면 도곤 족의 지식은 문화적 '오염'일 것이라고 하며 이러한 '오염'을 일으킨 주체가 마르셀 그리올과 같은 민족지학자들이라고 주장한 사람도 있다.

또 로버트 템플(Robert K. G. Temple)이라는 학자는 망원경은 고사하고 과학적 장비라고는 구경조차 하지 못한 도곤족이 그렇게 많은 사실을 알기 위해선 외계인과 조우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 주장했다. 칼 세이건의 견해는 조금 다르다. 그는 1930년대엔 유난히 서부아프리카에 서구인들의 발길이 잦았고, 그들 중 몇몇 사람들이 도곤족과 별에 관한 얘기를 나눴을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자연스레 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이자, 전설의 주인공인 시리우스에 관한 이야기도 오갔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도곤족은 다양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1920년대부터 시리우스에 얽힌 사실들이 과학 잡지에 자주 실리곤 했다는 것을 이에 대한 증거로 제시한다.(이현주, 가면을 쓴 현자 도곤족, <GEO> 2003.7. 129)

 

이야기가 너무 딱딱한 것 같은 데 주제를 바꾸지.”

내 제안에 문형과 한형이 동의했다. 그래서 KBSMBC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적이 있는 슈퍼피쉬와 게레올 축제로 화제를 돌렸다. 다행이 두 사람 모두 이 프로를 시청했다고 했다.

슈퍼피쉬는 KBS인간과 물고기의 대서사시란 타이틀의 5부작으로 방영했지?” 문형의 말에 나는 그 중에서도 말리의 메말라가는 안토고(Antogo) 호수에서 메기를 잡는 축제가 가장 인상 깊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이 축제에서는 4천여 명이 약속된 날짜의 주어진 15분 동안에 경쟁적으로 물고기를 잡는다고. 이 행사는 어쩌면 호수의 물고기를 보호하는 차원이기도 한 것 같아. 다른 때는 잡지 못하게 하니까.”

그래요. 사막에서는 허락된 고기잡이가 필요하겠지요.” 한형이 맞장구를 쳤다.

 

풀라니족의 게레올(Gerewol) 축제도 유명하다고.”

풀라니족은 어느 나라에 사는데?”

“7백만 명이 살고 있는 나이지리아를 비롯해 기니, 말리, 니제르, 카메룬, 차드, 수단 등에 분포하고 있는데 통틀어 2천만 명쯤 된다나. 말리에는 280만 명, 니제르에는 150만 명인 것으로 파악되는 데 게레올 축제는 니제르에 있는 풀라니족, 그중에서도 풀라니족의 소집단인 우다베(Wodaabe)족에서 벌이는 행사라고 해.”

어떤 축제인가?”

풀라니족 사회에서는 1년에 한 번 게레올 축제를 열고 있는데 백미는 꽃미남 선발대회야. 온몸을 짙게 화장한 남자들이 벌이는 미스터 풀라니 대회라고나 할까. 풀라니족은 남녀 공히 외모에 관심을 갖지만 특히 남성의 경우 유목 중에도 거울을 수시로 들여다볼 정도로 외모를 중시하기 때문에 개최하게 되었다나.”

거참 볼만 하겠네.” 문형과 한형이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남의 조건은 까다롭다. 너무 말라서도 안 되고 살이 쪄도 안 된다. 적당히 근육이 잡힌 몸매에 치아가 하야말갛고 고르며 코가 오뚝해야 하고 눈에서 빛이 나며 눈 흰자위가 하얄수록 미남으로 쳐준다고 한다. () 사실 게레올에서 우승한다고 상금이나 상품을 받는 것은 없다. 단지 인근 마을 처녀들이 다 모여서 보기 때문에 선망의 대상이 될 뿐이다.(장형원·한학수, 아프리카의 눈물, 72)

 

호주의 고고학자이자 고인류학자인 피터 매캘리스터는 남성퇴화 보고서 진화를 멈춘 수컷의 비밀(원제 Manthropology)이란 저서에서 힘, 허세, 싸움, 운동 능력, 말 재주, 미모, 육아, 성적 능력 등 8개 분야로 고대 남성 대 현대 남성을 비교하면서 미모 면에서 풀라니족과 투아레그족을 내세웠다. 풀라니족 남자의 미모는 여자 뺨칠 정도로 아름답고, 투아레그족 남성의 몸매는 여자들을 기절시킬 정도이기 때문에 베일로 온몸을 감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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